소개
와카야마현 깊은 산속의 고야산. 해발 약 800미터의 산상 분지에 펼쳐진 이 성지의 가장 안쪽에, 홍법대사 구카이가 지금도 명상을 계속하고 있다고 전해지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오쿠노인(奥之院)입니다. 이치노하시(一の橋)에서 고뵤(御廟)까지 약 2킬로미터에 걸친 참배길 양쪽에는 20만 기가 넘는 묘비와 공양탑이 수백 년 된 삼나무 거목 사이에 빼곡히 늘어서 있어,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영적 공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내려앉는 참배길을 걷다 보면, 이끼 낀 석탑 사이에서 서늘한 기운이 살며시 피부를 스치고, 삼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만이 귀에 닿습니다. 그곳에는 전국시대 무장부터 서민까지, 약 1,200년에 걸쳐 사람들이 ‘구카이 곁에서 잠들고 싶다’고 소원해 온 신앙의 무게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고야산 오쿠노인은 2004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기이산지의 영지와 참배길’의 구성 자산으로 등재되었으며, 국내외에서 연간 약 150만 명이 찾는 일본 유수의 성지입니다. 이 글에서는 오쿠노인의 역사를 홍법대사 구카이의 입정(入定)부터 현대까지 자세히 살펴보면서, 꼭 봐야 할 명소, 주변 관광 스폿, 교통편까지 철저하게 안내합니다.

고야산 오쿠노인 개요
오쿠노인은 고야산 동쪽 끝에 위치하며, 홍법대사 구카이의 고뵤를 중심으로 하는 고야산 최대의 성역입니다. 이치노하시에서 고뵤까지의 약 2킬로미터 참배길은 ‘오쿠노인 참배길’이라 불리며, 일본 최대의 영원인 동시에 일본 유수의 순례길이기도 합니다.
| 정식 명칭 | 고야산 오쿠노인(奥之院) |
|---|---|
| 소재지 | 와카야마현 이토군 고야초 고야산 550 |
| 종파 | 고야산 진언종 (총본산 곤고부지) |
| 본존 | 홍법대사 구카이 (고뵤에서 입정) |
| 참배 시간 | 참배길은 24시간 개방 / 등롱당은 6:00~17:00 |
| 배관료 | 무료 |
| 세계유산 | 2004년 등재 ‘기이산지의 영지와 참배길’ |
※최신 참배 정보는 고야산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해 주십시오.
참배길 곳곳에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겐신, 다테 마사무네를 비롯한 전국시대 무장들의 묘소와 공양탑이 수없이 늘어서 있습니다. 적과 아군의 구분 없이, 이 성지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게 홍법대사 곁에서 평화롭게 잠들어 있습니다. 그 광경은 ‘일본 역사의 축소판’이라고도 불리며, 역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하나하나의 묘비를 둘러보는 것만으로 몇 시간이 걸릴 만큼 볼거리가 풍부합니다.
오쿠노인의 가장 안쪽에 있는 고뵤는 홍법대사 구카이가 조와 2년(835년)에 입정한 장소입니다. 진언밀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구카이는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영원한 명상에 들어가, 지금도 중생의 구제를 위해 기도를 계속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이 ‘입정 신앙’이야말로 고야산 오쿠노인을 일본 불교의 성지 중의 성지로 만든 핵심입니다.

고야산 오쿠노인의 역사
1. 홍법대사 구카이와 고야산의 개창(816년)
고야산 오쿠노인의 역사는 홍법대사 구카이(774~835년)의 생애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사누키국(현재의 가가와현)에서 태어난 구카이는 엔랴쿠 23년(804년)에 견당사로 당나라에 건너가, 장안(현재의 시안)의 청룡사에서 혜과 화상으로부터 진언밀교의 오의를 전수받았습니다. 불과 2년 만에 밀교의 정통 후계자가 된 구카이는 귀국 후 진언밀교를 널리 전파하기 위한 이상적인 수행지를 찾아 나섰습니다.
고닌 7년(816년), 구카이는 사가 천황으로부터 고야산 땅을 하사받아 이곳에 진언밀교의 도량을 열 수 있는 허락을 받습니다. 해발 약 800미터의 산 위에 펼쳐진 분지를 ‘여덟 잎의 연꽃’에 빗대어, 연꽃잎처럼 주위를 여덟 개의 봉우리가 둘러싼 지형을 밀교의 이상향으로 삼았습니다. 구카이가 이 땅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전설에 따르면 당나라에서 귀국하는 배 위에서 삼고저(三鈷杵)를 던졌더니 그것이 고야산의 소나무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구카이는 제자들과 함께 가람 건설에 착수했지만, 험준한 산길과 혹독한 기후는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자재 운반에는 산 아래에서 며칠이 걸렸고, 겨울에는 눈과 추위가 작업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럼에도 구카이의 굳건한 의지와 제자들의 헌신으로 금당, 대탑 등 주요 전당이 차례로 건립되었습니다. 구카이에게 고야산은 현세에 있으면서 부처의 세계를 구현하는 ‘만다라의 세계’를 지상에 재현하는 원대한 프로젝트였습니다.

2. 구카이의 입정과 오쿠노인 신앙의 시작(835년)
조와 2년(835년) 3월 21일, 구카이는 고야산 오쿠노인에서 입정했습니다. 입정이란 영원한 선정(깊은 명상 상태)에 드는 것을 의미하며, 진언밀교의 가르침에서는 ‘죽음’과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구카이는 56만 7천일(약 1,500년) 동안 미륵보살이 하생(下生)할 때까지 명상을 계속하며,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고 전해집니다.
이 입정 신앙이 오쿠노인을 일본 불교 최고의 성지로 끌어올렸습니다. 구카이가 지금도 살아서 명상을 계속하고 있다는 신앙은 오쿠노인에 독특한 영기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고뵤에는 매일 아침 6시와 10시 30분 두 차례에 걸쳐 ‘쇼진쿠(生身供)’라 불리는 식사가 올려집니다. 이것은 구카이에게 식사를 공양하는 의식으로, 1,200년 가까이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한겨울의 눈 오는 날에도, 태풍이 오는 날에도, 전쟁 중에도 —- 이 의식이 중단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입정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구카이의 제자들은 스승 곁에서 수행을 계속하기를 원하며 오쿠노인 주변에 암자를 지었습니다. 이윽고 ‘구카이 곁에서 잠들고 싶다’는 신앙이 널리 퍼져, 귀족과 무장, 승려들이 잇달아 오쿠노인에 묘소와 공양탑을 세우게 됩니다. 이것이 현재 20만 기가 넘는 묘비군의 시작입니다.
3. 중세 —- 무장들의 신앙과 고야산의 발전
헤이안 시대 후기부터 가마쿠라 시대에 걸쳐 고야산은 천황가와 후지와라씨 등 유력 귀족으로부터 깊은 귀의를 받았습니다. 특히 시라카와 상황은 고야산을 여러 차례 참배하며 많은 전당을 건립했습니다. 이 시기에 오쿠노인 참배길을 따라 황족과 귀족의 공양탑이 잇달아 세워져, 성지로서의 격식이 한층 높아졌습니다.
전국시대에 접어들면서 오쿠노인은 무장들의 신앙 대상으로 더욱 중요성을 더했습니다.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겐신,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다테 마사무네 등, 천하통일을 놓고 서로 싸웠던 무장들이 적과 아군의 구분 없이 오쿠노인에 묘소를 두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생전에는 칼을 겨누었던 숙적끼리 사후에는 홍법대사 아래에서 나란히 잠들어 있다는 그 광경은, 오쿠노인이 ‘삶과 죽음을 초월한 평등의 세계’임을 말해줍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고야산의 관계입니다. 덴쇼 13년(1585년), 히데요시는 기슈 정벌 당시 고야산을 공격할 태세를 보였지만, 고야산 측의 외교 교섭으로 파괴를 면했습니다. 이후 히데요시는 태도를 일변하여, 돌아가신 어머니의 보리를 위해 고야산에 세이간지(현재의 곤고부지 전신)를 건립했습니다. 오쿠노인에 있는 히데요시의 묘소도 이 시기에 조성되었습니다.
4. 근세 —- 서민 참배의 확산과 메이지의 시련
에도 시대에 접어들면서 고야산은 막부의 보호 아래 안정된 시대를 맞이합니다. 도쿠가와 가문은 대대로 고야산을 숭경하여, 오쿠노인 참배길 입구 근처에 장대한 도쿠가와가 영대(靈台)를 건립했습니다. 초대 이에야스와 2대 히데타다를 모신 이 영묘는 도쇼구에 필적하는 화려한 장식이 시공되어 있으며, 현재도 중요문화재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에도 시대 중기 이후에는 ‘고야 참배’가 서민들 사이에도 퍼졌습니다. ‘한 번은 고야산을 참배하고 싶다’는 신앙심에 더해, 여행 붐 속에서 고야산을 찾는 서민이 급증합니다. 참배길을 따라 숙방(寺院 숙소)은 참배객으로 북적였고, 오쿠노인은 신분이나 빈부의 차이를 넘어 누구나 참배할 수 있는 성지로 기능했습니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은 고야산에 큰 시련을 가져왔습니다. 메이지 원년(1868년)의 신불분리령과 그에 이은 폐불훼석의 폭풍은 일본 각지의 불교 사찰을 파괴했습니다. 고야산도 예외가 아니어서, 일부 전당이 철거되거나 사찰 영지가 몰수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쿠노인의 고뵤와 참배길의 묘비군은 파괴를 면해, 1,200년의 역사가 단절되지 않았습니다. 홍법대사에 대한 신앙의 강함이 거센 파도를 넘긴 것입니다.
5. 현대 —- 세계유산 등재와 국제적 성지로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고야산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다이쇼 14년(1925년)에 난카이 전철 고야선이 고야시모 역까지 연신되고, 쇼와 5년(1930년)에는 고쿠라쿠바시 역에서 케이블카가 개통되었습니다. 이로써 오사카에서 당일치기 참배가 가능해져, 고야산 참배자 수는 비약적으로 증가했습니다.
2004년 7월, 고야산은 ‘기이산지의 영지와 참배길’의 구성 자산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구마노 산잔과 요시노·오미네와 함께 등재된 이 유산은 일본의 산악 신앙과 순례 문화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 되었습니다. 세계유산 등재 후 고야산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여, 현재는 연간 약 30만 명의 외국인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쿠노인의 나이트 투어는 외국인 여행객에게 큰 인기입니다. 밤의 장막이 내린 참배길을 승려의 안내와 함께 걷는 이 투어에서는, 약 2만 기의 등롱 불빛만을 의지하며 이끼 낀 묘비 사이를 누비듯 나아갑니다. 낮과는 완전히 다른 유현(幽玄)의 세계가 펼쳐져, ‘Spiritual Japan’을 체험하고 싶은 외국인에게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됩니다. 2015년의 ‘고야산 개창 1200년 기념 대법회’에는 약 200만 명이 참배하여, 홍법대사에 대한 신앙이 1,200년이 지난 지금도 쇠퇴하지 않았음을 증명했습니다.

볼거리·추천 스폿
고야산 오쿠노인을 방문하면 꼭 놓칠 수 없는 스폿을 엄선하여 소개합니다.
1. 이치노하시에서 고뵤바시까지의 참배길 —- 역사의 회랑을 걷다
오쿠노인의 정식 참배는 ‘이치노하시(一の橋)’에서 시작됩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성역에 들어선다고 전해지며, 참배객은 다리 앞에서 한 번 절을 하고 나서 건너는 것이 예법입니다. 이치노하시에서 고뵤바시까지의 약 2킬로미터 참배길에는 수령 200년~600년이 넘는 삼나무 거목 약 680그루가 우뚝 솟아 있고, 그 아래에 20만 기가 넘는 묘비와 공양탑이 늘어선 압도적인 경관이 이어집니다.
참배길은 ‘상단’, ‘중단’, ‘하단’의 3단으로 나뉘어 있으며, 시대별로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치노하시에 가까운 구역에는 오슈 후지와라씨와 가마쿠라 막부와 연이 있는 오래된 공양탑이 늘어서 있고, 중단에는 전국시대 무장들의 묘소가 집중되어 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공양탑은 의외로 소박한 모습으로, 천하인의 영화를 되새기기에는 너무나 겸손합니다. 반면 도요토미가의 묘소는 히데요시다운 웅장함이 있어, 양자의 대비가 흥미롭습니다.
참배길을 걸을 때 주목해야 할 것은 묘비의 형태와 크기의 다양성입니다. 높이 수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오륜탑부터 이끼에 묻힌 작은 지장보살까지, 실로 다양한 형태의 공양탑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시대, 신분, 종파를 넘어 ‘홍법대사 곁에서’라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세워진 이 묘비들은 일본인의 깊은 신앙심을 보여줍니다. 이른 아침의 참배길은 특히 신비로운데, 아침 안개 속에 삼나무 거목이 떠오르는 광경은 마치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합니다.

2. 고뵤·등롱당 —- 홍법대사 구카이가 잠든 최성의 땅
고뵤바시를 건너면, 거기서부터는 촬영 금지인 가장 신성한 구역입니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합장·일례하는 것이 참배 예법이며, 여기서부터는 모자를 벗고 음식을 삼가는 것이 예의로 되어 있습니다. 다리 아래를 흐르는 다마가와의 맑은 물은 과거 참배객이 몸을 정결히 하던 곳으로, 수면에 드리운 석등롱 열이 유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고뵤 앞에 있는 ‘등롱당(燈籠堂)’은 당내에 약 2만 기나 되는 등롱이 빼곡한 장대한 공간입니다. 그중에는 1,000년 이상 불이 꺼지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꺼지지 않는 불’이 2기 있습니다. 하나는 기신 상인이 바친 ‘기신등(祈親燈)’, 또 하나는 시라카와 상황이 기증한 ‘시라카와등’입니다. 어두컴컴한 당내에 무수한 등롱의 불빛이 일렁이는 광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장엄하여, 방문한 이들 대부분이 저절로 두 손을 모으게 됩니다.
등롱당 지하에는 ‘지하 법장’이 있으며, 이곳에서는 고뵤 바로 아래에 가까운 위치에서 홍법대사에게 기도를 올릴 수 있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면 공기가 서늘하게 바뀌고, 지상과는 확연히 다른 고요함이 감돕니다. 벽면에 빼곡히 늘어선 작은 불상 앞에 앉아 눈을 감으면, 1,200년 전부터 이 장소에서 명상을 계속하고 있다는 구카이의 존재를 피부로 느끼는 듯한 불가사의한 감각에 휩싸입니다.

3. 전국시대 무장 묘소 순례 —- 적과 아군이 잠든 평등의 성지
오쿠노인 참배길 중에서도 유독 인기가 높은 것이 전국시대 무장 묘소 순례입니다. 일본 역사에 이름을 남긴 무장들의 공양탑이 참배길 좌우에 늘어선 광경은 마치 ‘역사 교과서가 입체화된’ 듯한 박력이 있습니다.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의 묘소는 참배길을 사이에 두고 거의 마주보는 위치에 있습니다. 생전에 가와나카지마에서 5차례에 걸친 격전을 벌인 숙명의 라이벌이, 사후에는 홍법대사 아래에서 나란히 잠들어 있는 것입니다. 다케다 신겐의 묘소는 자연석을 쌓아 올린 소박한 구조로, 신겐의 질박강건한 무장상을 연상케 합니다. 반면 우에스기 겐신의 묘소는 ‘비(毘)’ 깃발로 유명한 ‘의(義)’의 무장에 걸맞은 단정한 모습입니다.
다테 마사무네의 묘소는 참배길 중에서도 유독 웅장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넓은 구획에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오륜탑이 안치된 모습은, ‘독안룡’의 위풍당당한 생애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케치 미쓰히데의 공양탑은 참배길에서 약간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조용히 서 있어, ‘혼노지의 변’의 주인공이 겪은 기구한 운명을 느끼게 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묘소 근처에 오다 노부나가의 공양탑이 있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로서 방문객의 관심을 끕니다. 사무라이의 역사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더없이 매력적인 스폿입니다.
4. 미즈무케 지장 —- 고인의 명복을 비는 청정한 장소
고뵤바시 바로 앞에 위치한 ‘미즈무케 지장(水向地蔵)’은 다마가와 강가에 늘어선 아름다운 지장보살상군입니다. 참배객은 이곳에서 미즈토바(水塔婆)에 고인의 법명이나 속명을 써서 다마가와의 맑은 물에 흘려보내며 명복을 빕니다. 미즈토바는 1장 200엔에 봉납소에서 접수하고 있으며, 누구나 고인의 공양을 할 수 있습니다.
지장보살상은 십여 체가 일렬로 늘어서 있으며, 어느 것이나 온화한 표정을 띠고 있습니다. 이끼와 낙엽으로 덮인 석불의 모습은 그 자체로 풍아(風雅)하며, 그 앞을 흐르는 다마가와의 맑은 물소리가 장소의 고요함을 한층 돋보이게 합니다. 특히 가을 단풍 시즌에는 빨갛고 노란 낙엽이 수면에 떠다니며, 지장보살과 함께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미즈무케 지장 구역은 고뵤로 향하는 참배객이 반드시 지나는 곳이지만, 서두르다 보면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잠시 멈춰 서서 맑은 물에 손을 담그고, 조용히 고인을 떠올리는 시간을 갖는 것은 오쿠노인 참배의 소중한 일부입니다. 일본 불교에서 ‘물’이 지닌 정화력을 체감할 수 있는 장소이며, 마음을 정화한 후 고뵤를 향한다는 참배의 흐름에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5. 기업 공양탑 —- 현대적 신앙의 형태
오쿠노인 참배길에는 전국시대 무장이나 역사적 인물의 묘비뿐 아니라, 현대 기업이 건립한 공양탑도 다수 존재합니다. 이것은 오쿠노인만의 독특한 광경으로, 일본 기업 문화와 신앙의 융합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UCC 우에시마 커피의 ‘커피컵 모양’ 공양탑일 것입니다. 실물 크기의 커피컵을 본뜬 석조 탑은 처음 보는 참배객 대부분이 놀라움과 미소를 함께 지을 만큼 인상적입니다. 이 탑은 같은 회사의 커피 원료인 커피콩 산지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공양하기 위해 세워진 것입니다. 또한 닛산 자동차의 ‘엔진 모양’ 공양탑, 야쿠르트의 ‘야쿠르트 용기 모양’ 공양탑, 흰개미 공양탑, 로켓 모양의 공양탑 등도 참배길을 따라 늘어서 있습니다.
이러한 기업 공양탑은 언뜻 보면 성지에 어울리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생명을 평등하게 추모한다’는 홍법대사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기업 활동에 관련된 모든 생명 —- 동물, 식물, 나아가 ‘사물’의 생명까지 —- 을 공양하는 것은 진언밀교의 세계관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고대의 무장부터 현대의 기업까지, 시대를 초월하여 사람들이 오쿠노인에 공양의 장을 구해 왔다는 사실은 이 성지의 포용력을 상징합니다. 약 400개 기업이 이 땅에 공양탑을 건립한 것은 홍법대사에 대한 신앙이 현대 사회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증거입니다.

주변 관광 스폿
1. 단조가란 —- 고야산의 또 하나의 성역
오쿠노인과 함께 고야산의 또 하나의 성역이 ‘단조가란(壇上伽藍)’입니다. 오쿠노인에서 도보 약 30분(버스로 약 10분) 거리에 있으며, 홍법대사 구카이가 처음으로 가람 건설에 착수한 장소입니다. 높이 약 48.5미터의 ‘곤폰다이토(根本大塔)’는 고야산의 상징으로, 주칠의 다보탑이 주변의 녹색과 어우러져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단조가란에는 금당, 곤폰다이토, 미에도(御影堂), 부동당(국보) 등 약 20개의 전당이 늘어서 있어, 진언밀교의 만다라 세계를 지상에 재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곤폰다이토 내부에는 태장계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한 입체 만다라가 안치되어 있어, 당내에 한 발 들여놓으면 부처의 세계에 감싸이는 듯한 장엄한 공간이 펼쳐집니다. 오쿠노인이 ‘구카이가 잠든 곳’이라면, 단조가란은 ‘구카이가 가르침을 형상화한 곳’으로, 양쪽 모두 방문해야 고야산의 전체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단조가란의 ‘삼고의 소나무’도 놓칠 수 없는 스폿입니다. 구카이가 당나라에서 던진 삼고저가 걸려 있었다고 전해지는 이 소나무는 보통 2장인 잎이 3장으로 갈라지는 희귀한 삼엽송입니다. 이 소나무 잎을 주워서 지갑에 넣어 두면 돈 걱정이 없다는 전설이 있어, 참배객이 땅바닥을 정성스레 찾는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2. 곤고부지 —- 진언종의 총본산
오쿠노인에서 버스로 약 15분 거리에 있는 곤고부지는 고야산 진언종의 총본산으로, 고야산을 방문한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스폿입니다. 현재의 본전은 분큐 3년(1863년)에 재건된 것으로, 히와다부키(노송나무 껍질 지붕)의 대지붕이 특징적인 당당한 건축물입니다.
곤고부지의 볼거리는 가노파 화가가 그린 후스마에(장지문 그림)입니다. 특히 ‘류로즈(柳鷺圖)’와 ‘우메노마(梅の間)’의 후스마에는 일본 미술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으며, 격식 높은 쇼인즈쿠리(書院造) 공간에 그려진 섬세한 일본화의 세계에 빠져들게 됩니다. 또한 일본 최대급 석정(石庭) ‘반류테이(蟠龍庭)’는 2,340제곱미터의 면적에 백사와 청석으로 암수 용이 운해 속에서 마주보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석정은 쇼와 59년(1984년)에 홍법대사 입정 1150년 기념으로 조성된 것입니다.
곤고부지에서는 숙방 체험도 가능하여, 승려의 생활을 엿보면서 정진 요리를 맛보거나 아침 근행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고야산 전체에는 52개의 숙방이 있으며, 각각 특색 있는 정진 요리와 정원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하룻밤 묵으며 오쿠노인의 야간 참배를 하는 것이 가장 충실한 고야산 체험입니다.
3. 고야산 영보관 —- 국보급 불교 미술 컬렉션
단조가란 바로 근처에 위치한 ‘고야산 영보관’은 고야산에 전해지는 불교 미술의 지보를 수장·전시하는 박물관입니다. 오쿠노인에서 버스로 약 15분 거리에 있습니다. 국보 21건, 중요문화재 148건을 포함한 약 10만 점의 컬렉션은 일본 불교 미술관으로서 최고 수준의 질과 양을 자랑합니다.
특히 놓칠 수 없는 것이 운케이 작으로 전해지는 국보 ‘팔대동자입상(八大童子立像)’입니다. 부동명왕의 권속인 8체의 동자상은 하나하나 다른 표정과 자세를 지니고 있어, 가마쿠라 시대 사실적 불상 조각의 최고봉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국보 ‘불열반도(仏涅槃図)’는 세로 약 2.7미터, 가로 약 1.9미터의 대화면에 석가의 입멸 장면이 그려진 헤이안 시대의 명품입니다.
영보관의 입장료는 성인 1,300엔으로, 오쿠노인이나 단조가란과는 또 다른 각도에서 고야산의 문화적 가치를 체감할 수 있습니다. 도다이지와 호류지에 버금가는 일본 불교 미술의 보고로, 미술이나 역사에 관심 있는 분께 특히 추천합니다. 전시는 정기적으로 교체되므로, 몇 번 방문해도 새로운 발견이 있습니다.

교통편
전철로 가는 방법
고야산으로의 교통은 난카이 전철이 가장 편리합니다. 오사카 난바 역에서 난카이 고야선 특급 ‘고야’에 승차하여 종점 고쿠라쿠바시 역까지 약 1시간 30분. 고쿠라쿠바시 역에서 난카이 고야산 케이블카로 고야산 역까지 약 5분입니다. 고야산 역에서는 난카이 린칸 버스로 환승하여 ‘오쿠노인구치’ 버스 정류장까지 약 15분(이치노하시에서 참배하는 경우), 또는 ‘오쿠노인마에’ 버스 정류장까지 약 20분(나카노하시에서 참배하는 경우)입니다.
도쿄에서 오는 경우, 신칸센으로 신오사카 역까지 약 2시간 30분, 신오사카에서 난바 역까지 지하철 미도스지선으로 약 15분, 난바 역에서 난카이 특급으로 고쿠라쿠바시까지 약 1시간 30분입니다. 총 약 4시간 30분 소요됩니다. 교토에서는 긴테쓰 특급으로 오사카난바까지 약 35분, 거기서 난카이 특급으로 환승하는 루트가 편리합니다.
버스로 가는 방법
고야산 내 이동에는 난카이 린칸 버스가 필수입니다. 고야산 역을 기점으로 단조가란, 곤고부지 앞, 오쿠노인구치, 오쿠노인마에 등 주요 스폿을 연결하는 버스가 운행되고 있습니다. ‘고야산·세계유산 티켓'(오사카에서 성인 2,860엔)을 이용하면 난카이 전철 왕복과 버스 무제한 승차가 세트로 되어 있어 경제적입니다.
자동차로 가는 방법
자동차의 경우, 한와 자동차도·기시와다이즈미 IC에서 국도 480호선 경유로 약 1시간 30분입니다. 고야산 내에는 여러 주차장이 있으며, 오쿠노인으로는 ‘나카노하시 주차장'(무료·약 100대)이 가장 가깝습니다. 다만 가을 단풍 시즌이나 골든위크에는 매우 혼잡하므로 이른 아침 도착을 권장합니다. 고야산으로 가는 산길은 구불구불한 도로가 이어지므로, 운전에 자신이 없는 분은 전철·케이블카 이용이 안심입니다.
추천 교통편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난카이 전철과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루트입니다. 험준한 산길을 오르는 케이블카 차창 밖으로 고야산의 깊은 산림이 한눈에 들어와, 성지를 향하는 마음을 고조시켜 줍니다. 일본 교통수단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이 글도 참고해 주십시오. 고야산은 하루로는 다 돌아볼 수 없을 만큼 볼거리가 많으므로, 숙방에서 하룻밤 묵으며 오쿠노인의 이른 아침 참배나 야간 참배를 체험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맺음말
고야산 오쿠노인은 홍법대사 구카이가 약 1,200년 전에 입정한 이래, ‘살아 있는 성자 곁에서 잠들고 싶다’는 사람들의 신앙을 모아 온 일본 불교 최고의 성지입니다. 20만 기가 넘는 묘비가 늘어선 참배길, 1,000년 이상 불이 꺼지지 않는 등롱당의 ‘꺼지지 않는 불’, 매일 아침 구카이에게 올려지는 식사 —- 모든 것이 ‘구카이는 지금도 살아 있다’는 신앙의 증거입니다.
전국시대 무장 묘소 순례, 고뵤에서의 조용한 기도, 기업 공양탑이라는 현대적 신앙의 형태 등, 오쿠노인에는 몇 번을 찾아도 새로운 발견이 있습니다. 세계유산으로도 등재된 이 성지는 일본 문화의 가장 깊은 정신성에 닿을 수 있는 곳입니다.
고야산의 매력을 더 깊이 알고 싶으신 분은 곤고부지 글이나, 같은 세계유산인 구마노 산잔, 히에이잔 엔랴쿠지 글도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일본 산악 신앙의 세계가 한층 깊이 보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