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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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사가노(嵯峨野)에 자리한 **노노미야 신사(野宮神社)**는 헤이안 시대의 역사를 현대에까지 전해 주는 신비로운 신사입니다. 천황의 대리인인 **사이오(斎王)**가 **이세 진구(伊勢神宮)**로 떠나기 전에 몸을 정화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유서 깊은 배경은 물론,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에도 묘사되어 그 문학적 가치도 높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노노미야 신사의 개요와 역사, 그리고 볼거리를 자세히 소개하여 그 매력을 남김없이 전달하고자 합니다. 방문 전에 알아 두면 좋을 정보를 꼼꼼하게 담았으니, 교토 관광을 계획하시는 분께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노노미야 신사(ののみやじんじゃ)**는 교토시 우쿄구 사가노(嵯峨野)에 자리한 신사로, 주제신으로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皇大神, 노노미야 오오카미)**를 모시고 있습니다. 이 신사는 천황의 대리인으로서 이세 진구(伊勢神宮)에 봉사하는 **사이오(斎王)**가 이세로 떠나기 전 몸을 정화하던 “노노미야”였던 곳에서 유래하며, 헤이안 시대의 문학 작품인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의 “켄키(賢木)” 편에도 등장합니다.
경내에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쿠누기(참나무) 원목으로 만든 **“쿠로키 토리이(黒木鳥居)”**와, 쿠로모지(辛夷葉 녹나무)로 만든 **“소시바가키(小柴垣)”**가 있어, 고대의 신성한 분위기를 지금까지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노미야 다이코쿠텐(野宮大黒天)**은 인연을 맺어 주는 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옆에 있는 **“오카메이시(お亀石)”**를 쓰다듬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전해집니다.
노노미야 신사는 좋은 인연·연애 성취, 자녀 축복·안산, 학업 성취 등의 이익(ご利益)이 있다고 알려져 많은 이들이 참배합니다. 특히 경내사인 **시라후쿠 이나리 다이묘진(白福稲荷大明神)**은 자녀 축복·안산, 상업 번창의 신으로 신앙받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름다운 이끼 정원과 사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이 경내를 물들이며, 방문객의 마음을 한층 더 편안하게 합니다.
접근성도 편리해, 게이후쿠 전기철도 아라시야마 본선 아라시야마역에서 도보 약 10분, 혹은 JR 사가노선 사가아라시야마역에서 도보 약 10분 거리에 있습니다. 주변에는 **아라시야마 죽림 산책로(嵐山竹林の小径)**나 텐류지(天龍寺) 등 유명 관광지가 많아, 관광 코스의 일부로 함께 방문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노노미야 신사의 역사적 배경을, 헤이안 시대에 “노노미야(野宮)”로서 맡았던 역할부터 현대에 신앙의 장으로 재흥되기까지, 주요 사건을 연표 형식으로 자세히 소개합니다.
1. 794년: 헤이안쿄(平安京)로의 천도와 노노미야의 설치
헤이안쿄로 천도함에 따라, 천황의 대리인으로 **이세 진구(伊勢神宮)**에 봉사하는 **사이오(斎王)**가 선발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이오는 이세로 떠나기 전에 몸을 정화하기 위한 **“결채소(潔斎所)”**로서 노노미야를 사용했으며, 현재의 노노미야 신사가 그 장소로 전해집니다. 당시 노노미야는 **쿠로키 토리이(黒木鳥居)**나 소시바가키(小柴垣) 등, 고대 제사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구조로 지어져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습니다.
2. 1000년경: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에 등장하는 “노노미야” 묘사
헤이안 시대 문학 작품인 **『겐지 모노가타리』**의 **“켄키(賢木) 편”**에는 노노미야가 등장합니다. 주인공인 **히카루 겐지(光源氏)**와 **롯조노 미야스도코로(六条御息所)**가 이별하는 장면이 노노미야를 무대로 그려지며, 신성한 장소인 동시에 서사적 비애가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 문학적 묘사가 후세에 이르기까지 노노미야 신사의 존재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 1333년: 사이오 제도의 폐지
남북조 시대로 접어든 **1333년(원홍 3년)**에, **쇼시 내친왕(祥子内親王)**이 마지막 사이오로 기록되었습니다. 이후 시대적 변화에 따라 사이오 제도가 폐지되면서 노노미야의 기능도 종료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를 모시는 장소로 신성시되어, 지역 신앙이 이어져 내려가게 됩니다.
4. 1573년: 전란에 의한 쇠퇴와 재흥
아즈치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의 전란으로 인해, 노노미야 신사도 황폐해졌습니다. 그러나 이후 고나라 천황(後奈良天皇), 나카미카도 천황(中御門天皇) 등 역대 천황의 **륜지(綸旨)**를 통해 재건이 추진되었습니다. 이 복원 작업은 노노미야 신사가 황실과 깊은 연을 맺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5. 1907년: 근대 노노미야 신사로서 정비
메이지 시대가 되자, 전국적으로 신사 정리·통합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노노미야 신사는 지역 신앙을 유지한 독립 신사로 남았는데, 특히 1907년(메이지 40년) 경내 정비가 이루어지며 현재 모습에 가까운 신사로 정비되었습니다. 이 시기 이후로 좋은 인연·자녀 축복·학업 성취의 신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참배객도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노노미야 신사(ののみやじんじゃ)**는 교토시 우쿄구 사가노(嵯峨野)에 자리한 신사로, 인연맺기와 자녀 축복·안산의 이익(ご利益)이 있다고 전해져 많은 참배객이 찾습니다. 경내에는 다음과 같은 볼거리가 있습니다.
■ 쿠로키 토리이(黒木鳥居)
쿠누기(참나무)의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쿠로키 토리이”**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토리이 양식 중 하나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보존의 어려움과 원목 확보의 곤란으로 인해, 현재 일본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귀중한 토리이로 손꼽힙니다. 주홍색 토리이와는 달리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고, 주변 녹음과 어우러져 아늑하고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자아냅니다.
■ 주탄고케(じゅうたん苔) 정원
경내에는 **“주탄고케(じゅうたん苔)”**라 불리는 아름다운 이끼 정원이 있습니다. 약 20평 정도 되는 규모로, 온통 이끼가 깔려 있어 마치 초록 융단을 펼쳐 놓은 듯한 모습입니다. 정원 안에는 흰 모래로 표현한 강과 작은 다리가 조성되어 있으며, 아라시야마(嵐山)의 풍경을 상징적으로 담아냈습니다. 특히 여름철에는 주변의 대나무숲과 어우러져 청량감 넘치는 광경을 연출해 방문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 오카메이시(お亀石)
노노미야 다이코쿠텐(野宮大黒天) 앞에 위치한 **“오카메이시(お亀石)”**는 노노미야 신사에서 가장 강력한 파워 스폿(Power Spot)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돌을 소원을 담아 쓰다듬으면 1년 이내에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전해지며, 특히 연애 성취에 큰 이익이 있다고 알려져 참배객이 끊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쓰다듬은 결과 돌 표면이 검게 반질거릴 정도로 매끄럽게 변했습니다.
■ 시라후쿠 이나리 다이묘진(白福稲荷大明神)
경내사 중 하나인 **“시라후쿠 이나리 다이묘진”**은 자녀 축복·안산, 그리고 상업 번창에 이익이 있다고 전해집니다. 특히 여성 신도가 많으며, 가족의 건강이나 안산을 기원하는 참배객이 줄을 잇습니다. 또한, **아키시노노미야 부부(秋篠宮ご夫妻)**가 이곳을 참배한 뒤에 임신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 이익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노노미야 신사는 헤이안 시대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를 느낄 수 있는 교토를 대표하는 신사 중 하나입니다. 쿠로키 토리이나 오카메이시처럼, 오직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신성하고 특별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연맺기, 자녀 축복, 안산 등 다양한 이익을 바라며 전국 각지에서 참배객이 모여듭니다.
아름다운 사가노의 대나무숲이나 아라시야마 일대의 관광과 결합하면 더욱 알찬 여행이 될 것입니다. 부디 노노미야 신사를 찾아, 고도의 역사와 정취를 느끼면서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고 소원을 빌며 특별한 시간을 보내 보시기 바랍니다.